[CK INTERVIEW] 청강을 만났고, 만화가가 되었다.
  • 작성일 2015-08-24
  • 작성자 Chungkang

 

 

[청강을 만났고, 만화가가 되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02학번 최경진 (필명: 앙꼬)

만화 에서 눈에 익은 성남 골목과 ‘진돌이’가 살던 골재상을 지나 상가 건물 안의 작업실을 찾았다. 앙꼬 작가가 들려주는 만화만큼 드라마틱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Q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 요즘에는 장애인 농성장을 취재해 만화로 그리고 있어요. 섬섬 프로젝트인데,만화작가 다섯 분, 글작가 다섯 분이 작업하고 있어요. 그 중 장애인 농성장을 맡았습니다.

 

Q 섬섬, 그러니까 ‘섬과 섬을 잇다’ 프로젝트는 장기농성현장을 르뽀작가와 만화작가가 함께 찾아가서 취재를 통해 다큐멘터리 만화를 그리는 프로젝트지요? 어느 농성장을 취재했나요?

/ 광화문에 장애우 농성장 생긴지 3년째 되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뭐가있는지, 무엇을 하는 건지) 모르시더라고요. 그게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년이나 되었는데 사람들이 전혀 모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지나가면서 서명은 다들 해주시면서 말이에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어요. 장애등급제 기준상 2등급 이상인 경우, 활동보조인이 지원됩니다. 그런데 등급이라는 자체가 서류로 작성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필요하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원을 받으실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집에 불이 났는데 거동을 하실 수없으셔서 돌아가신 분이 다섯 분이나 되고요.

 

 

Q 그러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는 몇 번째 참여하셨나요?

/ 2010년에서 용산참사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만화로 그렸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네요.

 

Q 다큐멘터리 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니고 솔직히 일이 들어오고 그 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Q 사람들이 ‘앙꼬’ 작가 하면 다큐멘터리 만화나 작가주의 만화를 하는 작가로 알고 있는데, 사실 1세대 웹툰 작가로 데뷔했잖아요

/ 강풀 작가의와 함께 딴지일보에 연재했어요. ‘스노우캣’이 나간 자리에 제가 들어가 연재했죠. 그러다가 야후로 옮겼어요. 웹툰 일상만화를 계속 그렸으면 웹툰 작가로서

 

Q 계속 작업을 하셨을 텐데 왜 그만두시게 된 건가요?

/ 두 가지 일을 같이 했었어요. 웹툰을 하면서 그와 동시에 극화도 같이 그렸어요. 극화에 좀 더 비중을 두며 작업을 하다가 시간 나면 웹툰을 그렸어요. 그리고 야후에서 일을 할 때에는 일주일에 마감이 세 번이었는데, 고료가 굉장히 적었거든요. 2년 정도 아무 일도 못하고 그것만 계속했었어야 했어요. 그때 너무 데여서인지 웹툰보다는 천천히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페이지 만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아요

 

Q 언제부터 만화를 하고자 마음을 먹었나요?

/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Q 그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2002년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재학 당시 만화창작과에 입학했잖아요? 어떻게 만화창작과에 들어오게 되었나요?

/ 제 작품에서 ‘나쁜친구’는 저였어요. 학교에 도저히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모범생이었던 친구가 제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자기 돈으로 원서를 사서 접수해줬어요. 여러 대학 디자인과에 원서를 넣었어요. 한 10군데 정도? 원서를 넣다보니 딱 한군데 원서를 더 넣을 수 있는 돈만 남아서 고민하는데 그때 바람이 불면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홍보지 가 날라 왔어요. 청강대로 써보자…. 그런데 다른 곳은 모두 떨어지고, 청강문화산업대학교만 붙었어요.

 

Q 정말 운명적인 만남인데, 2002년이면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 만화창작과가 처음 생겼는데 어땠어요?

/ 실은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겼어요. 날라리 세계에 있다가 일반인의 세계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강대에 오니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거에요. 그래서 1학기 동안 그림을 보여주지않았어요.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던 거죠.

 

Q 만화를 그리게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 그림일기처럼 연습장에 제 이야기를 계속 그려왔어요. 친구가 보더니 ‘뭐야 너 만화 그리잖아’라고 하는 거에요. 정말 놀랐어요. 이게 만화라고? 친구들이 제 연습장의 일기를 보고 좋아해주고, 아침에 오면 제 일 기장을 찾고. 그게 너무 즐거웠어요. 봐줄 사람이 생기니까 계속 그리게된 거죠. 그리고 ‘테두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만화회지를 내기로 했어요.저는 별로 할 생각이 없는데 일단 하는 척 하자하고 버티고 있었어요. 완성한 작품도 없이 2개월의 합숙을 끝내고, 집에 가서 1주일 만에라는 만화를 그렸어요. 그게 처음으로 그려본 만화였어요. 그 작품을 보고 딴지에서 연락이 왔어요. 얼렁뚱땅 만화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슬럼프는 없었나요?

/ 너무 갑작스레 시작해서 그대로 쭉 해오고, 대체 이게 어디가 재미있다는 거지? 의심이 들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요. 아마 타인의 만화를 보기 시작한 후 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유서처럼 그려놨던 스케치북이있는데 거기 마지막에 ‘뭔가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아는 게 두렵다’ 그렇게써 놓았더라고요. 모름의 상태가 될 수 없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렇게 절 망의 상태에 빠졌어요. 5년 동안 달려왔던 게 숨가쁘고 지쳤었나 봐요. 원고를 넘기고 필리핀으로 가버렸어요. 제 2의 날라리 생활이 시작되었죠.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오니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 실컷 노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엄청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다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용산만화가 들어왔 고, 몇 년 만에 마음을 정리하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열심히 원고를 완성했을 때, 드디어 몇 년 동안의 시간을 이겨냈다. 이제부터 나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자리 잡지 못 하고 헤매고 있을 때 엄마가 암에 걸리셨어요.

 

Q 한참을 빙 돌아서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된 거네요.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 거죠? 작업할 때는 괜찮았나요?

/ 사람들과 함께 살던 짐승 같은 상태였어요. 혼자 남겨졌다는 것에 대한분노가 응축되어져 온갖 것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로 작업만 했던 것 같아요. 결국 작업 중간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그러던 중 집 앞 교회에 다시시던 분이 갑자기 저를 찾아오신 거에요. 더 이상 혼자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저를 굴에서 꺼내주셨어요. 저는 그때 내 자신이 가장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그렇게 생각한 시간이 가장 맛이 갔던 시간이었던 거죠. 그 분을 만나고의 반을 완성했어요.

 

 

Q 방황의 시간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겠어요.

/ 다 그만두고 안정적인 일을 택할 게 아니라면, 지금 겪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미래의 안전을 계산하지 않고 일단 부딪치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못 이겨낸다면힘든 일이지만, 여러 감정을 겪고 살았다는 게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남을 이해할 수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거 같아요.

 

 

Q 앞으로 작업계획은 어떻습니까?

/ 1년에 한 편씩 장편을 제작하려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 사이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어요. 만약 지금 상태로 계속 갈 수 있다면 계속 장편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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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K INTERVEW 영상캡쳐

편집 홍현규 / 입학홍보처

Copyright ⓒ CK-spirit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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