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스쿨 프로덕션 뉴스레터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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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청강 뮤지컬스쿨은 급변하는 공연시장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공연을 기획, 제작함으로써 현장형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이에 특집 기획기사를 마련, 뮤지컬스쿨의 지난 일 년 공연을 결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학내 공연의 전형성 탈피 2017년 뮤지컬스쿨 정기 실습공연의 목표는 학내 공연의 전형성을 탈피하는 것에 집약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비교적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학원물, 가령 <그리스>, <페임>과 같은 작품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와 양식을 시도했던 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1, 2학기 각각 <컴퍼니>, <쥐>, <헤어스프레이> 그리고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번지점프를 하다>로 채워진 라인업에는 이러한 스쿨의 지향과 의지가 잘 반영되어 있다.
뮤지컬 <컴퍼니>는 드라마와 음악의 기존 패턴을 탈피하고 뮤지컬 장르의 외연을 확장한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이다. 뮤지컬이 즐겨 다루는 도시 남녀의 사랑과 결혼이 주요 소재이지만 그것을 낭만적으로 다루기보다 오히려 회의적으로 관찰한다는 점에서 현장에서도 쉽게 시도되기 어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연극 <쥐>는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박근형의 작품으로서 ‘보편적인 테마를 특수하게’ 다루는 특유의 극사실적 그로테스크 미학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쇼뮤지컬인 <헤어스프레이>는 앞의 두 작품보다 실험성의 수위는 낮으나 인종, 외모, 빈부에 따른 차별의 부당함을 1960년대의 복고적 감수성에 담아 설파하는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유명하다. 한편, 2학기 라인업에는 전술했듯 음악극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이후 <거평>)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포함되었다. <거평>은 기존의 장르로 호명되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을 구현함으로써 현장의 주목을 받았던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첫 작품이다. 공연을 풍성하게 만드는 장식적인 요소를 가급적 배제한 채 ‘배우의 육체’에 집중한 아카펠라+퍼포먼스 중심의 양식이 매우 특징적이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청강 뮤지컬스쿨의 시그니처와 같은 작품으로서 무대연출과 음악의 서정성이 특히 돋보이는 국내의 대표적인 창작뮤지컬 중 하나다. 이와 같이 실험적인 연극에서 뮤지컬의 장르적 외연을 넓히는 작품들, 그리고 주제의식이 강한 뮤지컬과 스쿨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까지, 2017년 청강 뮤지컬스쿨의 정기공연은 다양한 ‘도전과 실험’ 속에서 학내 공연의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지향을 뚜렷이 선보였다.
텍스트 분석력과 무대 구현능력의 배양 그렇다면 실제 프로덕션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텍스트 분석력과 이를 무대 위에 구현하는 능력이 한층 배양되었음을 거론할 수 있겠다. 기실 텍스트 분석은 공연 제작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연기전공과 무대미술전공 학생들이 공히 텍스트를 기반으로 연기와 무대에 대한 컨셉을 마련하고 이를 육화(肉化)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하는 이유다. 뮤지컬 <컴퍼니>와 연극 <쥐>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이 훈련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았다.
뮤지컬 <컴퍼니>
<컴퍼니> 참여 학생들은 드라마를 박자로 쪼개 음악에 흡수하는 손드하임 특유의 작품 구성방식을 이해하고 모호해 보이는 결말의 의미를 찾기 위해 텍스트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갈 것이 요청되었다. 특히 드라마의 흐름과 음악의 극적인 결합이 명확히 보이는 통합뮤지컬(integrated musical)과 달리, 크리에이터의 의도와 표현방식에 더 큰 비중을 두며 기존 플롯의 정형화된 개념을 깨고 등장한 컨셉뮤지컬(concept musical)로서 <컴퍼니>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자신을 둘러싼 친구 커플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던 주인공 로버트의 심리변화가 뚜렷이 포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구들의 반복적인 등장이 주인공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 전체적인 관계성을 찾는 작업이 핵심이었다. 학생들은 텍스트 분석을 마친 이후 때로는 발랄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인물들에게 접근하며, <컴퍼니>의 드라마가 어떤 결론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기’에 대한 성찰을 자극하는 작품임을 인지해갔다. 로버트 뒤에서 무대를 열고 닫으며 인물의 심리를 따고 들어가다가, 무대 양 옆 로버트를 지켜보는 위치에서 상황을 객관화하는 블로킹을 반복적으로 완수했던 장면들은 이러한 인지가 필요했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연극 <쥐>는 식인과 살인을 자행하는 특별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구현할 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인간의 삶 자체가 타자를 위해하고 잡아먹는 폭력적인 사이클 안에 놓여있다는 관념을 구체화한 작품이지만, 실제 무대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족 개개인의 심리와 사연, 그리고 그것이 맞부딪히는 사건에 대한 세부적 이해가 필요했다. 학생들은 인물의 행동과 심리적 동기를 찾기 위해 텍스트 내부를 심도 있게 파고들면서 리얼리즘과 그로테스크의 수위를 조절했다. 작품의 그로테스크 미학의 감도를 어디까지 어떻게 높일 것인지 작품의 세계관과 결부시키는 작업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사각의 오픈 무대를 활용하여 객석의 관점을 다각화하고, 2층 무대 활용과 백스테이지를 노출시킨 무대 아이디어는 작품의 미학적 특징과 잘 어우러졌다. 텍스트 안에서부터 무대 구현의 아이디어를 도출한 무대전공생들과 이를 토대로 작품의 독특한 세계관을 펼쳐낸 연기전공생들의 협업이 돋보였던 무대였다.
기초교육에 대한 필요성 재확인 청강 뮤지컬스쿨은 향후 미래비전 중 하나로 ‘기초교육 강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 전략은 현재 뮤지컬스쿨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양식과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은 지점에서 다양한 실험을 도전적으로 수행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강의에서 요청하는 기준점이 높아지고, 높아진 기준에 따라 공연을 수행해야 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역량을 더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반적인 공연예술 시장과 교육시장의 흐름으로 보면, 스쿨의 이러한 비전은 현실을 역행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청강 뮤지컬스쿨은 학생의 현재와 시장의 현실보다 그 너머에 있는 ‘미래’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도 유동적·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재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거평이>는 이러한 비전과 목표를 실험하기 위해 선택된 작품이었다. 대사가 아닌 퍼포먼스의 힘을 체험해야 하고 반주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노래해야 하는 내적인 연기근육이 필수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디션에 통과된 학생들은 새로운 양식의 공연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 공연에서 굳어진 습관들을 덜어내고 스스로 공연의 리듬을 만들고 주도한다는 쉽지 않은 미션에 도전했다. 특히 다른 무대 세트의 도움 없이 조명과 영상이 함께 리듬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거평이>에 투입된 무대미술전공생들과의 호흡 역시 매우 중요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거평이>는 학생들이 스쿨의 목표에 한층 더 접근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작품이 따뜻하게 전달하는 ‘주체성 회복’의 문제를 인지하고 배우의 몸이 공연의 근본적·기본적인 단위임을 체험한 결과, 학생들은 공연의 장식적인 요소보다 자기 자신의 몸에 집중했고 무엇보다 내적인 연기근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거평이>와 동시에 공연된 <번지점프를 하다>는 한편의 서정시같은 작품의 톤이 잘 구현된 무대였다. 주인공 태희가 죽은 후 남자 고등학생 현빈으로 환생하여 결국 인우와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서사는 단순한 동성애물을 넘어선 독특한 감성을 전달한다. 이제는 유부남이 된 인우가 태희의 흔적을 현빈에게 느끼면서 되찾는 첫사랑의 ‘현존’은 관객이 인우의 시점으로 현빈을 바라보게 되면서 무대와 밀착된 감성을 갖게 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청강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오묘한 서정성을 전달하는 작품의 감성을 잘 담아내면서, 다른 한축으로는 고등학생들의 톡톡 튀는 발랄함을 잘 표현했다. 여러 장소를 무대 위에 동시적, 병렬적으로 리드미컬하게 담아내다가도 진지하게 주제의식에 접근하는 학생들의 연기가 특히 돋보였던 무대였다. 청강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청강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될 예정이다.
2018년 청강 뮤지컬스쿨은 학생들 각자의 역량 강화를 위해 프로덕션 시스템의 교육 환경을 업그레이드 하고 프로덕션 자체의 수위를 한층 더 높일 예정이다. 2017년 정기 실습공연에서 실험했던 ‘다양한 장르에 대한 도전과 응전’은 2018년 뮤지컬스쿨의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를 통해 한 단계 심화된 프로덕션 시스템과 그 결과물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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